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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악산 남장사(南長寺)품위 있는 산사(山寺)를 찾았다

기사입력 2009-10-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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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부드럽게 온종일 뿌리는 가운데 그 빗속을 즐기는 부산 동래에서 온 3명의 사나이와 이를 인도하는 자가 초록의 잎이 붉은 꽃이 되어 계곡을 지키고 있는 품위 있는 산사(山寺)를 찾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북 상주는 역사적으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특히 아자개와 견훤이 이곳의 주인장으로 그 사이가 좋지 않아 3대간 싸웠던 사람들이라 역사가 이를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 끝은 자명한 것이었다.

 


원래 상주는 신라 때는 ‘위 상(上)’자를 썼는데, 수도 경주보다 위에 있다고 해서 ‘상주’로 불렸고 이후에는 수도보다 위에 있다는 것이 걸렸는지, ‘숭상할 상(尙)’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상주는 백제와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곳이라 산성이 아주 많다.

 


그리고 상주는 들판이 넓다 보니 쌀 생산량이 전국 7위로 강원도 생산량과 거의 같다고 한다. 또 이것뿐만 아니라 곶감 생산량이 전국 1위에 60%의 시장 점유를 하고 있고 오이, 포도, 배, 사과, 한우 생산량이 2위권이다.

 


또 인구당 자전거 보유 대수가 전국 1위로 이것은 상주 시내가 분지형으로 자전거 타기에 아주 적합하여 거짓말 조금 보태서 버스는 없고 어린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자전거로 통행하여 남장사 초입에는 자전거 박물관이 있을 정도이다.

 


상주 역사는 여기까지 하고 남장사 가는 초입에는 ‘상주자전거박물관’이 있고 이곳부터는 감나무 세상이다. 그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과 일주문까지 펼쳐진 우거진 소나무 숲은 맑고 깨끗해 많은 사람들이 휴양지로 찾는다.

 

 

그 소나무 숲을 지나면 일주문이 나오고 그 일주문 바로 옆에는 40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혼자는 외로웠는지 쌍둥이 모양을 하고 정중하게 맞이한다.

 


인사를 받고 울퉁불퉁한 돌로 만들어진 길을 지나면 범종각이 나오고, 조금 더 지나면 극락보전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극락보전 앞 3층 석탑은 그 유명한 1977년에 영산전안에 봉안된 사리 4과(果)와 7보(寶)가 담겨 있는 진신 사리지함(眞身舍利紙函)이 발견됐다.

 


경내를 지나 보광전 앞에 심은 파초의 시원한 잎이 특별한 정취를 자아낸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전각들이 질서와 짜임새 있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유명하다.

 


얼굴은 단아하며 어깨에 닿을 듯 긴 귀는 목에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와 잘 조화를 이루어 위엄을 자아낸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부드럽게 흘러내려 양쪽 무릎을 덮고 있는데, 주름은 팔과 다리의 끝부분에만 나타났을 뿐 대담하게 생략하고 단순화시켰다. 손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상과 비교하여 손의 위치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엄숙한 얼굴 표정, 치마를 묶은 띠 매듭, 왼쪽 어깨에 드리워진 U자형 옷자락, 단아한 얼굴, 장대한 체구 등은 조선 초기의 불상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조선 철불상의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보광전 앞 기둥에 걸인 주련(柱聯) 한 수, 千江流水千江月  萬里無雲萬里天은 무엇을 뜻함일까? 찾아보니 이런 뜻이라는데...

 


靑山不墨天年屛이요 流水無絃萬古琴이라

千江流水千江月이요 萬里無雲萬里天이라

청간은 먹으로 그리지 아니하여도 천년의 병풍이요.

흐르는 물은 줄이 없어도 만고에 거문고더라.

천강에 물이 흐르면 천강에 달이요.

만리에 구름이 없으면 만리에 하늘이더라.

 

 

우리가 찾은 이날은 남장사 주변의 초록 잎이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경내의 은행나무는 알을 마음껏 품고 노랗게 물들어 우리들에게 길게 뻗어 자랑하고 있었으며 남장사 옆의 계곡은 가을비 속에 옷 깃을 여미고 숙연한 마음으로 산사를 내려왔다.

 


남장사는 신라 흥덕왕 7년(832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진감국사(眞鑑國篩)가 창건하여 장백사(長粨寺)라 하였으며, 고려 명종 16년(1186년) 각원화상(覺圓和尙)이 지금의 터에 옮겨짓고 남장사라 했다고 한다.

 


한국 최초 범패의 보급지이며, 보물3점(보광전목각탱, 관음선원목각탱, 철불상)과 지방문화재, 탱화 등을 다량 보유하고 사원암, 중궁암까지 두루 갖춘 다른 사찰에서 볼 수없는 고 사찰의 불교역사가 잘 보전되어 있다.

김대중 기자(abcseoul@empal.com)



박철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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