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산삼악(商山三嶽)의 연악(淵嶽)은 세칭 갑장산(甲長山)이니 용흥사(龍興寺)가 앉은 자리는 학(鶴)이 비상하고 용(龍)이 승천한 용연(龍淵)의 길상지이다.
갑장산 고즈넉한 품에 묻힌 용흥사는 상주시에서 경북대학교상주분교방향으로 10Km 쯤 떨어진 지천리에 소재하고 연악산(갑장산) 중턱에 위치하여 절 아래 개울에는 폭포가 있어 사찰경관을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절의 뒤쪽 골짜기에는 약수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1976년 극락전을 중수할 때 발견된 용흥사 중수 상량문이 발견되었고 이 상량문을 토대로 하여 사찰 입구 연꽃 연못 앞에 세원진 것이 ‘연악산용흥사사적비’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신라 문성왕 원년에 진감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고 다만 국사가 당나라에서 돌아 와 상주의 노악산 장백사에 있었다고 하는데 장백사는 남장사의 전신인즉 이 사실로 보아 그런가 할 수밖에 없다.
그 후 500년 동안의 일은 알 수 없고, 1805년 환월, 정화 두 스님이 지은 이 절 중수 상량문에 보면 나옹스님이 극락보전을 지었다 하였고 1647년(인조 25년)에 법심, 인화 두 스님이 중수하고 1680년(숙종 6년)에 사우, 홍홉 두 스님이 중수하고 1707년(숙종 33년)에 사준, 도인 두 스님이 중수하고 상량문 짓던 해에 유탄 원희 두 스님이 중수하였다‘고 적혀있다.
극락보전은 용흥사의 금당으로 정면, 측면, 각 삼간의 팔작집으로 되어 있으며 중수 당시에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극락전은 고려말 나옹화상이 처음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고 법당안의 주존불은 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왼편에 관세음 보살상, 오른편에 대세지보살상을 배치한 이른바 아미타 삼존불을 배치하였는데 모두 목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삼존불을 봉안한 위의 천장부의 천개에는 용트림과 운문조각이 특수하여 휘황스럽게 단청되어 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 밖에 나한전 산신각이 있고 각 전에는 여러 종류의 불정 및 후불정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극락보전 삼존불 뒤에 조성된 초대형 괘불(석가+아미타+약사여래)은 2003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1374호로 지정되어 귀중한 역사적 자료를 가지고 있다.
용흥사는 비구니스님들의 청정수도 도량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연꽃이 사찰 입구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인간 본성의 청정함을 주고 승천하는 용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고 헤쳐나 갈 용기를 무언중에 주고 있다.
<연꽃 이야기>
연꽃은 진흙이나 더러운 물에서 자라지만 결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아름다운 꽃이다. 마치 부처님과 중생의 본성이 청정하여 세속에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즉, 연꽃이 주변을 정화시키듯이 부처님은 이 세상을 정화시키시며, 연꽃이 더러움 속에 있지만 더러움에 때 묻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본성도 그와 같다고 하여 소중히 여겨왔던 것이다.
연꽃에는 법계진여(法界眞如)의 4가지 덕인 향(香)·정(淨)·유연(柔軟)·가애(可愛)가 있다고 하여, 불상의 대좌(臺座)나 광배(光背) 뿐만 아니라 석탑과 기와 등에 상징적인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연꽃을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극락세계를 연찰(蓮刹) 또는 연방(蓮邦)이라고도 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연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 설화에도 등장하고 있다.〈수행본기경〉이나〈불본행집경〉에 보면, 부처님이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시어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옮기는 걸음마다 수레바퀴 같은 연꽃송이가 피어올라 그 발걸음을 받쳐주었다고 한다.
연꽃은 인도 신화에도 언급되고 있는데, 창조주 브라마는 이 연꽃 속에서 우주를 창조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연꽃을 ‘로터스’라 하여 내세에 무한한 생명을 부여하는 재생의 상징으로 생각했고, 해가 뜰 때 꽃이 피고 해가 지면 꽃이 진다고 하여 태양숭배사상과 관련시켜 신성시하였다.
연꽃의 열매인 연자(蓮子)는 수명이 길어 3천년이 지난 후에 심어도 꽃을 피운다고 하여 불생불멸을 상징한다. 그래서 연자로 염주를 만들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