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과 소신은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와 열매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사람을 보며 ‘소신 있다’고 칭송하거나 ‘고집불통’이라며 혀를 차곤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내면의 작동 원리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고집은 ‘불안’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 곧 ‘자아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질 때, 인간은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반면 소신은 탄탄한 ‘자존감’과 ‘열린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고집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 정보를 차단하는 폐쇄적 방어 기제이며, 소신은 내면의 핵심 가치를 지키면서도 진리를 향해 사고를 확장하는 능동적 자기 신뢰이다.
고집과 소신을 가르는 첫 번째 잣대는 ‘근거의 객관성’이다. 고집은 대개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의 자존심이나 익숙함에 뿌리를 둔다. “내가 해봐서 안다”거나 “그냥 이게 맞다”는 식의 감정적 방어 기제가 강하게 작용한다. 반면 소신은 철저한 자기 성찰과 학습, 그리고 가치관에 근거한다. 소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논리적이고 명확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고집과 소신을 가르는 두 번째 잣대는 ‘유연성과 열린 태도’이다. 역설적이게도 소신 있는 사람은 고집 센 사람보다 훨씬 유연하다. 고집은 외부의 비판이나 새로운 정보를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문을 닫아걸고 자신의 성벽을 더 높이 쌓는 데 집중한다. 반면 소신은 ‘진리’를 향한 태도이다. 만약 자신의 생각보다 더 타당한 근거가 나타난다면, 소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할 줄 안다. 더 나은 가치를 위해 현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소신의 핵심이다.
고집과 소신을 가르는 세 번째 잣대는 그 행위의 지향점으로 ‘누구의 유익을 향하느냐’이다. 고집의 목적은 대개 ‘나의 옳음’을 증명하는 데 있다. 타인의 불편함이나 공동체의 손실보다 나의 체면이 우선시될 때 그것은 고집이 된다. 소신은 개인의 영달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정의, 양심, 예술적 완성도 등)를 지향한다.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을 때, 우리는 그것을 소신이라 부르며 존경을 보낸다.
지방선거가 조만간 실시되니 정치인의 고집과 소신을 구분하고자 한다. 먼저, 정치인의 소신은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한 뒤, 이를 자신의 철학이라는 필터로 걸러내어 정책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이다. 반면 고집은 민심과 동떨어진 채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진영 논리에만 매몰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두 번째로 소신 있는 정치인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대의를 선택한다. 반면 고집 센 정치인은 실패가 명확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 정치적 생명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해 끝까지 우긴다.
세 번째로 소신 있는 정치인은 자신의 핵심 철학은 지키되, 변화하는 시대상과 기술적 진보에 맞춰 정책적 수단을 수정할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을 발휘한다. 반면 고집 센 정치인은 자기 진영이 제공하는 정보만 수용하며, 비판적 시각을 ‘배신’이나 ‘공격’으로 간주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조만간 실시된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자기가 지역 발전에 최적인 사람으로 홍보와 광고를 하고 있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나라 아니 우리 동네는 천국이 될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정말 살기 좋은 동네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달성되었다는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 왜 그런가? 소신 있는 정치인이 부족한 것이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우리 지역의 발전을 위한 고집이 아니라 소신을 가진 사람이 선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자칫 소신을 가진 정치인을 고집이 센 또는 고집불통이라는 이름으로 판단한다. 어쩌면 이것은 자기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기가 만난 정치인이 고집이 센 것이 아니라 자기가 고집이 센 것이다. 자기가 불평불만이 많은 것이다. 자기의 욕구나 갈망보다 지역사회 공동체의 발전과 희망을 바탕으로 자기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누구를 선출하는 것이기보다 자신의 모습 가운데 어떤 것을 선출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 효산 조용태(심리상담전문가, 한국예술심리치료연구소 소장)